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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이미지

cityzarch 2016. 10. 22. 12:07

                                            도시의 이미지

                                                                Kevin Lynch The Image of the City

  환경의 이미지

 

 

 평범한 광경일지라도 도시를 보면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하나의 건축작품처럼 도시는 공간 구성이긴 하지만, 방대한규모의 것으로 오랜 세월이 경과할 때에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 설계는 일시적 예술이긴 하지만 음악같은 다른 일시적 예술의 통제되고 한정된 순서는 사용하는 일이 드물다. 경우와 사람에 따라, 그 순서는 역행되고, 중단되고, 파기되고, 서로 저촉된다. 그런점은 모든 견지에서 모든계절을 통해 보게 된다.

 

 갖가지 경우에,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있는 이상의 환경 또는 조망을 탐구해야 된다.

그 자체로만 경험되는 것은 없고 그것의 환경이나 그것에 이르게 되는 사건의 순서나과거의 경험에 대한 추억과 관련되어 경험되는 것이다. 농장에 세워진 Washington Street는 보스톤 중심부의 상가거리 처럼 보일런지는 모르지만 전혀 다르게보일 수도 있다. 모든 시민이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어느 부분에 대한 오랜 연상을 가지고 있으며,그의 Images는 추억과 의미(경험을 통한?) 젖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있어서의 동적인 요소와 특히 주민들과 그들의  활동은  정적인  물리적  요소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는  단순히 방관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일부분이 되어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대게의 경우 도시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한결같이 지속되지 않고 다른 관심과 섞여 오히려 국부적 이고 단편적 이다.거의 갖가지 감각이 작용되고 image는 그 모든 것의 합성이다.

 

 도시는 널리 여러 계층과 성격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사람들이 인지하는 (그리고 즐기기도 하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구조를 수정해 가는 많은 건축가 들의 산물이기도 하다.도시는 얼마동안

전체적인 윤곽에서는 정적 일런지 모르지만 세부면에서는 항상 변하고 있다. 국부적인 통제반이 그 도시의 성장과 형태에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감각적으로 즐기기 위한 도시 형성의 예술은 건축이나

음악이나 문학과는 아주 다른 예술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 못된다.그것은 다른 예술로부터 배울 점이 막대할런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을 모방할 수는 없다.

 

 아름답고 즐거운 도시환경이란 기이한 것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미국의

몇몇 town은 즐거운 단면을 좀 지니고 있지만 village 보다 큰 도시(city)중 단 하나도 모든 면에서

훌륭하지는 못하다.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인 들은 그러한(아름답고 즐거운) 환경 속에 산다는

것이 어떠리라는  생각을 조금도 못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못된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도시의

추한 점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으며 도시의 오물,매연,열기,교통혼잡,무질서 속애서의 단조로움에

대해서 아주 거리낌 없이 말한다.그러나 그들은 관광이나 휴가 여행시에만 얼핏 볼 수 있는 세계인

조화로운 환경의 잠재적 가치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그들은 일상의 즐거움 면에서나, 삶의

끊임없는 원동력으로서 혹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윤택하게 하는 일의 확장으로써,환경이 무었을 의미 하는지 거의 느낄 수 없다. 

<판독 가능성: Ligiblity>

  이 글은 시민이 지니고 있는 미국도시의 정신적 image를 연구함으로써 그도시의 시각적 특질을 살펴 보기로 한다 그리고 하나의 시각적 특질 다시말해 도시 풍경의 외형적인 명백성 즉 "판독 가능성"에 특히 집중 하려고 한다.이 말은 용이하게 각 부면이 인식되고 조리있는 유형으로 조직화 될 수 있다는 바로 그 용이함을 뜻한다.바로 이 쓰여진 page가 읽혀질 수 있다면, 인식할 수 있는 상징(글자?)의 연관된 형태로 시각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처럼, 판독될 수 있는 도시는 그 구역이나,

경계표 혹은도로가 쉽게 파악되고 전체적인 류형으로 조직될 것이다.

 이 글은 도시환경에 있어서 판독 가능성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주장하고,그것을 좀더 세밀하게 분석하고.이 개념이 오늘닐 도시를 재건하는데 어떻게 이용 될 수 있는가를 제시하려고 한다.독자에게는 곧 분명해지겠지만,이연구는 예비적인 탐색작업으로,착상을 포착하고 그 착상이 어떻게 발전되고

실험될 수 있는 가를 제안하는 시도이다.그논조는 추론적이고 아마도 좀 무책임할 것이며 디시 말해

좀 시험적이고 가상적일 겄이다.이 1장에서는 약간의 기본 개념들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다음 장들에서는 이것들을 미국 도시에 적용하고 도시설계에 미치는 그 영향을 논해 보겠다. 

 비록 명백성 즉 판독가능성이 결코 아름다운 도시의 유일한 특질이 아니지만,그것은 도시 규모의

크기와 시간과 복합성 면에서 환경을 고려할 때에는 특히 중요하다.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도시

자체로써만이 아닌 주민이 느끼는 도시로써 고려해야만 한다.환경을 구조화하고 확인하는 것은 모든 이동하는 동물들의 필수적인 능력이다.많은 종류의 단서가 사용된다.즉 색채 형태 운동 편광偏光의

시각적 감각뿐만 아니라 냄새, 음향, 촉감, 근육운동, 지각,전기 혹은 磁性분야의 중력감과 같은

다른 감각들이다. 제비 갈매기의 극지대 비행에서부터 삿갓 조개가 바위바닥의 미세한 형태표면

위로 길을 찾는데 이르는 방향설정 방향찾기의 기법이 묘사되고 그 중요성이 부연되어 강조되고 

있다.심리 학자들도,대충으로 또는 제한된 실험실 조건하에,인간속에 있는 이러한 능력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좀 의문스러운 점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제는 길찾는 신비스러운 "본능"이 있을

것 같지않다.오히려 표면적 환경애서 오는 분명한 감각적 단서의 조리있는 활용과 조직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조직화는 자유로운 이동생활의 능률과 그 존속자체에의 기초가 되고있다.

 완전히 길을 잃는다는 것은 현대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드문 일일 것이다.길을 가르쳐

줄 다른 사람들이 있으며 길을 찾기 위한 특별한 고안들 즉 지도,가로명,도로표지,버스표지판들이 있다.그러니 그 방향을 상실하는 일이 일단 일어나면 그에 수반되는 걱정 또는 공포감이 그 불상사와 

우리의 형평감과 행복감이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게 된다. "길을 잃는다"는

단어 자체가 단순한 지리적 불확실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즉, 완전한 재난의 어조를 띄우게

된다.

  길을 찾는 과정에 있어서, 전략적인 연관이 되는 것은 환경적 image 즉 외부의 물리적 세계에 대해

개인이 지닌 일반화된 정싱적 그림(상상도?)이다.이러한 image는 현실적인 감각과 아울러 과거 경험의 기억의 산물로 ,정보를 판독하고 행동의 지침으로 하는데 활용된다. 환경을 인식하고 유형화하는 것이 그처럼 중대하고 과거에다 그처럼  긴 뿌리를 내리고 있기때문에 이 image는 개인에게 광범위하게 실제적이고 정서적인 중요성을 갖게된다.

 확실히 분명한 image는 친구의 집이나 경찰이나 단추가게를 찾는다든지 하는데 있어서 쉽사리 그리고 신속하게 돌아 다닐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질서있는 환경은 이보다 더하게,광범위한 참조 체제 혹은 행동이나 신념이나 지식의 체계화를 돕는데 쓰일수도 있다.예를 들어 Manhattan을 구조적으로 이해ㅘㄴ 토대 위에서,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본질에 관한 상당량의 사실과 환상을 규정할 수 있다.어떻한 훌륭한 골격처럼,그러한 구조는 개인에게 선택의 가능성과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하는 출발점을 가져다 준다.분명한 환경의 image는 이처럼 개인정 성장을 위한 유용한 기초가 된다.

 예리한 image를 줄 수 있는 선명하고 통합된 물리적 환경은 또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것은 집단교신의 상징과 공동기억을 위한 생생한 자료를 제공할 수도 있다.인상적인 풍경은 많은 원시인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신화를 세운 골격이다.'고향'에 대한 공통적인 기억은 종종 전쟁중의 고독한 군인들 사이의 교제의 가장 손쉬운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훌륭한 환경적 image는 그것을 지닌자에게 중요한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그는 그 자신과 외부세계 사이에 조화로운 관련을 확립하게 된다. 이것은 방향상실에서오는 역현상인데,그것은 가정의 단란한 느낌은 가정이 익숙할 뿐만 아니라 분명할 때 가장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분명하고 판독할 수 있는 환경은 안전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경험의 잠재적 沈度와 强度를 

높여 주기도 한다. 비록 현대도시의 시각적 혼돈 속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더욱 선명한 환경속에서라면  똑같은 일상의 행동이 새로운 의미를 지내게 될 것이다.잠재적으로 도시는 그 자체가 복합적인 사회의 강력한 상징이다.만약 시각적으로 잘 설정된다면, 도시는 또한 강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물리적 판독 가능성의 중요성에  반박해서, 인간의 두뇌는 놀랍게 적응력이 있으며 약간의 경험으로

가장 무질서하고 특색없는 환경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할런지도 모르겠다.바다,사막,빙판의 인적없는 황무지 위 또는 밀림의 얽힌 미로를 통해 정확한 항행을 한 시례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바다만해도 태양과 별들,바람, 해류, 조류, 바다 색갈이 없다면 항행이 불가능 했을 겄이다.숙련된 전문가들이 더구나 절저한 훈련 후에야 Poiynesian 군도 사이를 항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런 특수 환경이 요구하는 곤경을 말해준다 최선의 준비를 갖춘 탐험에도 긴장과 우려가 수반되었다.

  우리 자신의 세계에서도, 거의 모든사람이 조심스럽기 만하다면 Jersey City를 항행(통행?)할 수는

조금은 노력을 하고 불안을 느껴야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더구나 판독할 수 있는 환경의 긍정적인 

가치 즉 정서적만족,전달이나 개념적 조직을 위한 골격, 일상 경험에 첨가될지도 모르는 새로운 심도를 상실하고 있다. 비록 현재의 도시 환경이 그에 이숙한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긴장을 부여할 만큼 무서워 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이러한 즐거움들이 결핍되고 있다.

  환경내의 신비,미로,의외성에도 상당한가치가 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많은 사람들이

House of Mirrors를 즐기고 Boston의 구불어진 거리에도 어떤 매력이 있다.그러나 이러한 것은 오직 두가지 조건하에서 만이다. 첫째는,기본 형태나 방향을 잃는 즉 다시 나올 수 없다는 위험이 없어야만 한다. (둘째로) 이외성은 전체골격에 걸쳐 일어나야 하지만 ,혼돈은 알아볼 수 있는 전체내의 일부에만 있어야 한다.더구나 미궁이나 신비는 자체속에, 탐색되고 이윽고 이해될수 있는 어떤 형태를 내포해야 한다. 연관된 암시가 없는 완전한 혼돈은 결코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두번째 생각은 중요한 구비요건을 지적해 준다. 관찰자 자신이 그 세계를 감지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그의 image를 발전시켜 나가는 창조적인 면을 지녀야 한다. 그는 변하는 필요에 부합되게 그 Image를 변화시킬 능력을 지녀야 한다.정확하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밀하게 정돈된 환경은 새로운 형태의활동을 억제할런지도 모른다.모든 바위마다 사연이 담긴 풍경은 새로운 설하들을 창조하는 것을 어렵게 할런지도 모른다.비록 이러한 사실이 현제의 도시혼돈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으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더욱 발전해 갈 수 있는 개방적인 질서라는 것을 말해 준다.

  <image형성>

환경적image는 관찰자와 그의 환경 사이의 교호과정의 결과이다.환경은 특이성과의 연관을 의미하고,관찰자는 막대한 적응력과 자신의 목적 면에서 그가 보는 것을 선택하고,조직하고 의미를 부여한다.이렇게 발견된 image는 이제 보여진 것을 한정하고 강조하는 반면에,image자체는 끊임없는 교호과정 속에 여과(선택,조직,의미부여?)된 지각적 입력으로 검토되고 있다.이렇게 해서 주어진 현실의 image는 여러 관찰자들 사이에서 의미를 지니고 변하게 된다.

  그 image의 일관성은 몇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정돈되거나 훌륭한 실제 대상속에서는 별로 볼 수 없르런지도 모르지만,그에 대한 정신적 상상도는 오래 익숙함으로써 본체와 조직화를 획득하개된다  디른 사람에게는 전적으로 무질서한 작업대로 보이는 것에서 쉽사리 대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혹은, 처음으로 보는 하나의 대상이 개별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찰자가 이미 형성한 고정

관념에 맞아들기 때문에 본체가 밝혀지고 연관될런지도  모른다,Bushman이 아무리 구별하기 어려울지라도,미국인은 항상 길모퉁이의 약방을 발견할 수 있다.또한,새로운 대상은 자체의 형태를 의미

하거나 부여하는 눈에띄는 물리적 양상 때문에 강렬한 구조와 본체를 드러낼런지도 모른다.이렇게 해서 바다나 높은 산은,너무 어리거나 경험 부족으로 이런 현상(바다,높은산)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내륙 평원지대에서 온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다.

 물리적 환경의 교묘한 조작자로써,도시설계자는 주로환경적 Image를 형성하는 교호작용의 외면적

動因(agent)에 흥미가 있다.여러 다른 환경은 image형성과정을 억제하거나 촉진하게 된다.어떤 주어진 형태는섬세한 꽃병이든 진흙덩어리이든,여러 관찰자들 사이에 강한image를 자아내는 높거나 낮은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추측컨데 이러한 가능성은 관찰자가 년령 성별 문화 직업 기질 혹은 친밀도에 있어서 더욱 더 동질의 계층으로 구성됐을수록 더욱 더 정확하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image를 창조하여 지니게 되지만 같은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일치가 이루어진 것 같다.다수인이 활용할 환경을 설계하려고 갈망하는 도시설계자들을 흥미롭게하는 것은 상당수 인원의 합의를 표시하는 집단 image들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심리학자에게는 흥미로울지 몰라도개인적인 차이점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첫째과업은도시주민 대다수가 지닌 공룡의 정신적인 상상도인  소위 "대중image"가 될 것이다. 즉 일개 물리적현실과 공룡의 문화와 기초적인 생리학적 인간성의 교호작용속에 나타나리라고 보는 일치된 영역을 의미한다.

  (續)